개역개정 본문

끝까지 용서하라
1_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적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_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_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_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믿음의 능력
5_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을을 더하소사 하니
6_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종의 자세
7_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_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_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_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3절 '조심하라'는 현재명령형으로 지속적인 주의를 요청하고 있다.



쉬운성경 본문

죄와 용서

1_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짓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죄짓게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2_ 어린아이 하나라도 죄짓게 하면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3_ 너희는 조심하여라. 만약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책망하여라. 그러나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4_ 만일 네 형제가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그 때마다 돌아와서 잘못했다고 빌면 용서해 주어라."
겨자씨만한 믿음
5_ 사도들이 주님께 말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6_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뽕나무더라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겨라' 해도 그것이 네 말에 순종할 것이다."
선한 종이 되어라
7_ "너희 가운데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일을 맡은 종이 있는데, 그가 밭에서 돌아오면 '어서 이리 와서 앉아 먹어라' 하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8_ 오히려 종에게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들다가 그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_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고맙다고 하겠느냐?
10_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하고 나서 '우리는 가치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끝까지 용서하라
'작은 자' (쉬운성경은 어린아이)는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하여 찾아온 약한 자들, 낮은 자들, 상처받기 쉬운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실족케 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실족한다 : 헬라어로 "스칸달론"이며 이 말은 "스칸달리제이"(마18:6)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덫으로 쓰이는 미끼 대' 입니다. 즉 막대기에 미끼를 붙이거나 달아서 동물이 그것을 보고 먹으려고 와서 잡히도록 유인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실족이란 누군가를 범죄하게 만드는 것을 뜻하며, '죄짓게 하는 덫', '사람을 파멸시키는 덫'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죄는 지적하고 꾸짖어야 합니다. 하지만 죄를 회개하고 돌아온 자는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일곱 번의 용서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닌 끊임없는 용서입니다. 마태복음에서도 베드로가 잘못한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주면 되겠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하면서 일곱 번이면 되겠느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마18:22) 라며 한없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훨씬 많은 용서를 받으니까 우리도 형제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18:23-35) 용서의 횟수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용서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능력
지금은 믿음을 '더할 때'가 아니라 그 믿음을 '행사할 때'라고 하십니다. 바라보기만하는 믿음이 아닌 확신이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한 때인것 같습니다.

종의 자세
종은 종의 할 일을 다했을 뿐이고 주인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부름받은 종입니다. 작은 자를 섬기고, 용서하고, 죄를 경계하는 일은 이미 큰 은혜를 받은 제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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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본문

허비하는 청지기의 비유
1_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_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_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_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_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느냐
6_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_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를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_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하나님의 재물을 둘 다 섬길 수 없다
9_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_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_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_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_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쉬운성경 본문

불의한 일꾼의 비유

1_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부자에게 재산을 관리하는 일꾼이 있었는데, 이 일꾼이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2_ 그래서 그를 불러다가 말했다. '내가 자네에 관해 들은 소문이 어찌된 일인가? 더 이상 자네를 일꾼으로 쓸 수 없으니, 자네의 일을 정리해 주게.'
3_ 그러자 그 일꾼은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이 내 일을 빼앗으니 어떻게 해야하나?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구걸을 하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4_ 내가 할 일을 알았다.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날 때, 사람들이 나를 집으로 맞이하게 만들어야겠다.'
5_ 그 일꾼은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렀다. 첫째 사람에게 물었다. '주인에게 빚진 것이 얼마요?'
6_ 그가 '올리브 기름 백말이오' 라고 대답하자 그 일꾼이 말했다.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앉아서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
7_ 또 다른 사람에게, 그가 진 빚이 얼마냐고 물었다. '밀 백 섬이오'라고 대답하자 그 일꾼이 말했다.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팔십 섬이라고 적으시오.'
8_ 주인이 그 불의한 일꾼이 슬기롭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그를 칭찬하였다. 이 시대에 아들들이 자기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
9_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곳으로 맞아들일 것이다.
10_ 아주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충실하다. 아주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충실하지 못하다.
11_ 그러므로 너희가 불의한 재물에도 충실하지 못하면, 누가 참된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_ 너희가 다른 사람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면, 누가 참된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3_ 그 어떤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지 아니면 한 편에게는 충성을 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든지 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6절 100바트에 해당하는 양이며, 1바트는 약 22리터 이다.
7절 100고르에 해당되는 양이며, 1고르는 10바트이다. 



기름 백 말 : 올리브 기름 100바트에 해당하는 양
밀 백 석 : 밀 100고르에 해당하는 양

청지기의 태도는 대표적인 두 관점이 있습니다.
1. 청지기는 주인이 받을 돈을 맘대로 줄인 부정직한 사람이지만, 꾀를 이용해 장래를 준비한 지혜만은 칭찬받는다.
2. 주인의 돈을 꿔줄 당시에 부정직하여 주인을 탐욕스런 자가 되게 했는데, 이제는 빚진 자들에게 본래 받아야 할 만큼의 액수로 삭감해주어서 자신의 장래를 준비한 것이다.

주인은 그 행위는 괘씸하게 여겼겠지만, 청지기의 영악함(지혜)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돈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지혜로운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재물을 주인으로 삼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참된 주님의 사명을 맡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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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본문

완고한 큰아들의 반발
25_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_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_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_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_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_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셔나이다
아버지가 잔치를 벌인 이유
31_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다 네 것이로되
32_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30절 '이 아들'은 '당신의 이 아들'이다. 동생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31절 '얘'는 '아들아'보다 더 친근한 부름이다. 무례한 아들의 침묵과 대조되는 아버지의 파격적인 사랑의 부름이다. 



쉬운성경 본문

집을 나간 아들의 비유

25_ 그 때, 큰아들은 밭에 있었다. 그가 돌아와 집 가까이 다가왔을 때, 음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_ 그는 종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인지를 물어보았다.

27_ 종이 '아우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무사히 건강하게 아우님이 돌아왔기 때문에 주인 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28_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 큰아들을 달랬다.

29_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저는 수 년 동안, 아버지를 섬겨 왔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저를 위해서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었습니다.

30_ 그런데 창녀들과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다 써 버린 아들이 집에 돌아오니까 아버지께서는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_ 아버지가 그에게 말했다. '아들아, 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으니 내가 가진 모근 것이 네 것이 아니냐?

32_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에 이어서 큰 아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아버지는 기쁘게 맞이하지만
큰 아들은 아버지의 지나친 사랑에 분노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문지방을 넘어서 설득하는 아버지 마저 거절합니다.
도리어 아버지를 자신에게 고된 일만 시키는 인색하고 고약한 고용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는 동생보다 재산을, 아버지와의 관계보다 자기만족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여 참 아들로 회복되었지만,
큰 아들은 자기 욕심을 숨기지 못해 아버지의 사랑을 조롱하는 죄인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 비추어 생각해 볼수 있는 모습입니다.
큰 아들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면 동생을 기쁘게 맞아 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동생 조차도 기쁘게 맞아주는 형에게 분명히 더 큰 장자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 내가 받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동체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들..
다른 지체를 보다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지 못하는 마음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랑의 마음이 변질 되지 않았는지 돌이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ruby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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